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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은 왜 외교정책으로 사대를 선택했을까?

   조선의 외교정책의 기본은 사대교린입니다. 사대교린은 사대와 교린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사대는 정확히 말하자면 사대자소(事大字小)로 작은 라가 큰 나라를 섬기고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교린은 이웃나라와 친하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그럼 사대자소에 주목해 봅시다. 사대자소에서 대와 소가 가리키는 대상은 무엇일까요? 대는 중국 왕조를, 소는 조선을 뜻합니다. 조선은 중국을 섬기고 중국은 조선을 보살펴 준다는 의미죠. 이것 때문에 조선의 외교정책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옵니다. 조선이 큰 나라에 의존한 나머지 주체적이지 못하고 그로 인해서 나라가 망했다라고 말할 사람도 있고 중국이란 강대국이 존재하는 데 살아남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 아니라 되레 실리를 얻어 중국과 일본, 러시아, 미국 사이에 껴있는 대한민국이 배울만 하다고 극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대자소를 부정적으로 보는 쪽도 긍정적으로 보는 쪽도 나름 일리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지 역사로부터 현재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양 입장의 연장선이긴 하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바로 조선인의 입장에서 왜 사대자소를 택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점을 달리하면 그 만큼 생각하는 폭도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조선인을 외교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왕과 대신들로 한정시키려고 합니다.

 

 

   조선의 건국 주체는 신진사대부입니다. 이들은 고려말의 어지러운 정국을 목도했고 성리학을 이념으로 하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여 성리학 이념을 실현하려고 하였습니다. 즉 신진사대부들은 기본적으로 고려라는 역사적 경험과 성리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이들이 조선을 건국하고 주도하는 정치도 신진사대부들의 역사적 경험과 성리학적 지식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경험 측면을 보겠습니다. 고려는 몽골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요, , 금과 다르게 고려는 몽골에게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인 종속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로인해 신진사대부는 몽골이 고려에게 끼친 많은 폐단을 지적하긴 했지만 동시에 고려-몽골간의 실질적인 종속관계에 익숙해지기도 합니다. 조선이 명에게 국호를 선택하게 해달라고 할 정도로 허리를 굽힌다던지 고려왕이 했던 것처럼 태종도 명의 황제와 사돈관계를 맺으려고 했다던지 조선초 중국에게 금, 은 등 막대한 세폐를 바치거나 환관이나 공녀를 받친다던지 하는 것은 신진사대부의 역사적 경험이 정책으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엔 성리학적 지식 측면을 보도록 하죠. 신진사대부의 경우 성리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몽골과 관련있었던 권문세족들이 농장을 넓히면서 노비가 늘어났고 그에 반비례하여 국가재정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를 시정해야 할 고려국왕도 몽골과 밀착하면서 동시에 농장을 늘려나갔고 사회윤리역할을 해야했던 불교 역시 권문세족이나 고려국왕 못지 않게 농장을 늘리고 노비를 늘려나갔습니다. 신진사대부들은 고려의 무너진 현실을 교정하기 위해선 새로운 윤리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성리학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리학은 남송에서 새롭게 해석된 유학이고, 남송은 북방의 거란족과 여진족에 밀려 영토를 뺏기고 조공을 바치는 신세였습니다. 성리학을 만든 주자는 이러한 현실을 부정적으로 봤고 중화와 오랑캐를 구분하고 중화가 우월하다는 화이관이 성리학에 담기는 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성리학은 단순히 주자의 철학만 말하는 학문이 아니라 여느 유학과 마찬가지로 역사를 중요시하게 여겼고 역사적 사실을 적극 활용합니다. 당연히 조선 건국 후 신진사대부는 성리학 사상에 입각했고 성리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전국에 향교를 세우고 성리학적 지식을 묻는 과거시험을 강화시켰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성리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니 출세하기 위해선 성리학에 대해 공부해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유교경전을 공부해야 했고 유교경전에 담긴 중화가 우월하고 오랑캐는 열등하다라는 인식을 받게 됩니다.

 

 

오랑캐 나라가 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여 면면히 백년을 이어갔으니 오랑캐가 세력을 떨침이 이 때만한 적이 없었다. 하늘이 더러운 덕을 싫어하셨는지라 大明이 하늘 한 가운데로 떠올라 聖人神人이 계승하였으니 아! 천만년을 이어가리로다.

동몽선습


  

   동몽선습에는 위와 같이 유목민족이나 수렵민족을 폄하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이 책이 성리학을 처음 공부하는 아동들이 공부하는 책이라는 것이죠. 어려서 무엇을 배우냐에 따라 인생의 관점이나 태도가 정해진다 볼 수 있는데 어려서부터 화이관을 받아들인다면 과거시험을 치르고 관리가 되서도 화이관에 입각한 외교정책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죠.

 


동몽선습언해. 박세무가 천자문을 익히고 난 아동들을 위해 쓴 책. 유교윤리와 중국역사 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내용도 있다. 언해본이 나올 정도로 광범위 하게 쓰였다.


 

   중국 역시 사대관계에 익숙해졌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중국은 자신에게 사대하는 나라에게 사신을 자국으로 파견하여 인사하게 하고 공물을 바치게 한 후 그 대가로 관직을 주거나 하사품을 내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중국은 주변국들에게 복종을 받아내어 국가 안보를 유지할 수 있었고 중화의 문화를 외부세계에 퍼트린다는 의무를 다하는 것을 신하들가 백성들에게 보여주어 천자의 권위를 드높이는데 활용합니다. 중국 역대 왕조들은 사대관계의 수립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였고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들은 이러한 역사를 배움으로서 사대관계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 명은 강했습니다. 명은 몽골을 몰아냈고 만주의 몽골군벌들을 항복시켰으며 운남과 베트남의 쩐왕조를 멸망시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도 예외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바짝 엎드릴 수 밖에 없었죠. 그렇지만 공포에 질린 것만은 아닙니다. 명은 조선에게 많은 이익을 안겨다 줬죠. 대표적인 분야가 안보분야입니다. 명은 나라가 크기 때문에 몽골이나 여진가 경계가 맞닿아 있고 일본과도 교류가 있었습니다. 조선은 명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주변국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 대비하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진왜란으로 명이 망했다는 이야기 나올 정도로 막대한 비용을 들어 조선을 도와줍니다. 그 밖에 명은 문화 선진국이기 때문에 수많은 서적을 받아들이고 인적교류를 하여 조선의 문화 발달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by 동두철액 | 2019/01/18 16:19 | 조선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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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남중생 at 2019/01/20 01:39
조선 초에 원-고려 관계가 이어졌고 이게 조선 건국세력의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정책선택이라는 해석은 흥미롭네요!
명의 초대 황제들도 몽골 계승의식을 표방했다는 점에서 수긍이 갑니다.
Commented by 동두철액 at 2019/01/25 14:32
네 저도 그렇게 봅니다. 주원장이 몽골풍습을 혐오하여 그 색채를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행정제도나 조세제도
등에 몽골유산을 계승한 걸 보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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