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1월 25일
조선이 중국과의 외교에서 경제적으로 손해 봤던 점
예전에 군 복무를 할 때 정부 홍보책자가 왔습니다. 이 책자에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홍보하고 언론이나 야당이 비판하는 내용에 대한 반박 등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역사 코너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 데 그 중 기억나는 내용 중 하나가 조선의 사대외교입니다.
사대외교의 핵심은 조공과 책봉입니다. 작은 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공품을 바치면 큰 나라에선 작은 나라의 왕을 인정해주고 하사품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홍보책자엔 조선이 중국에 조공물을 바쳐 경제적인 실리를 얻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유인 즉 조선에서 조공을 바치면 중국에선 조공품 이상으로 더 많은 하사품을 내려줬고 하사품 때문에 중국이 손해를 봐서 중국 조정에선 조선에서 사신오는 걸 부담스러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사신은 3년에 한 번만 중국에 와도 된다라고 통보했지만 조선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1년에 3번 올 수 있게 외교협상을 하여 조선 측 주장이 통용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정권에서 외교 정책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역사에서 근거를 찾아 갖고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도 여러 교양서적이나 학교 선생님들께서 사대외교는 형식적으로 불평등해 보이지 조선에게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다 줬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걔중엔 조선이 중국의 자존심을 이용하여 중국은 조선에게 이용당했다라는 식의 주장까지 들어본적이 있습니다.

조공이 경제적 무역요소가 있는 것은 맞습니다만 조선이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라는 주장에 대해선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조선이 중국에 조공을 한 것은 역사적, 안보적, 문화적 이유도 컸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경제적인 측면에선 손해보는 일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뇌물입니다. 조선에서 중국에 사절단을 파견하면 사절단은 조공품만 중국황제에게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황제 뿐 아니라 중국 황제를 모시는 대신들에게도 뇌물을 줘야 합니다. 조선이나 중국이나 뇌물은 하나의 관행이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뇌물을 받치는 것은 조선으로서 감당하기 힘들었음은 분명합니다.
당장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 뇌물이나 人情(뇌물을 이르는 말)을 검색하면 중국과 관련된 내용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옵니다. 하나만 예를 들기로 하겠습니다. 중종 13년 5월26일 석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중종 시기는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들이 조선을 유교화 시키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입니다. 계승범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사림과 중종의 의지로 조선이 조선 전기와 다르게 유교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림들은 연산군과 같은 폐악무도한 왕이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 왕이 자격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왕에게 유교교육시켜 올바른 유학 군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석강은 저녁에 신하가 임금에게 강연하는 유교교육 시간이었습니다. 사설이 길었는데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한충(韓忠)이 아뢰기를,
"주청사(奏請使) 이계맹(李繼孟)이 명나라로부터 돌아와서 이르기를 ‘서반(序班)으로 있는 이흠(李欽)이 우리 나라 일에 힘을 많이 썼다.’ 하기에, 그가 달라고 하는 물건을 이미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서반이란 것은 우리 나라의 통사(通事)와 같은 종류라 미천하기 이를 데 없는 자이니, 국가가 그에게 물건을 보내준다는 것은 또한 욕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이 옳다. 말하자면 이 또한 뇌물을 쓰는 것이라 할 수가 있다. 중원(中原)에서는 우리 나라를 예의지국(禮義之國)으로 알고 있는데 하찮은 벼슬아치에게 뇌물을 보내서 그 일을 성사시키려 한다면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부득이 물건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면 사신(使臣)이 스스로 주도록 하게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 조선 사신들은 중국 관리에게 뇌물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흠이란 자는 조선으로 치면 중인급의 낮은 관원임에도 뇌물을 줬던 것입니다. 중종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체념을 합니다.
이렇게 중국으로 간 사신들은 뇌물을 당연하게 썼고 중국에서 조선으로 사신이 파견되면 역시 접대를 해줘야 했습니다. 중종16년 기사를 보면 명나라 사신을 위한 뇌물을 위한 재원에 대한 논의를 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한명기 선생님 말대로 중국과 조선의 외교는 조선이 경제적으로는 많은 손해를 봤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경제적 착취를 당하는 속국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 역시 지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는 부분은 있지만 하사품을 받거나 조공품을 줄이려는 노력, 그리고 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손해를 상쇄하려고 했던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국과의 외교가 문화적, 안보적, 정치적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본 측면을 감안하면 다각도로 살펴봐야 함이 옳을 듯 합니다.
# by | 2019/01/25 18:19 | 조선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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