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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운남, 제주도2 - 소금

   운남이 몽골인에게 경제적으로 중요했던 또 다른 이유는 소금이 생산되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소금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질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석유와 같이 생산지가 제한되었고 또 석유를 석탄으로 대체할 수 있듯이 대체하 듯 소금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물질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소금을 확보하기 위해 인류는 엄청나게 노력을 했죠.


   그런데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은 소금의 중요성을 알고 생존을 담보로 하여 세수로 활용하게 됩니다. 바로 전매제의 실행이죠. 중국 역대 왕조는 전통적으로 소금을 전매하였습니다. 한의 무제는 흉노와의 전쟁에서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세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재원을 마련했는데 그 중 하나가 소금 전매였습니다.


   당 후기의 안록산의 난으로 당 중앙정부는 힘을 잃고 국토가 절도사가 다스리는 여러 개의 번진으로 나눠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각 번진은 세금을 중앙으로 올려보내지 않고 번진에서 자의적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당왕조는 세수 부족의 직면하게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강회 지역의 번진은 경우 당왕조에 충성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활용하여 제오기와 유안 등이 염법을 개정해 소금 전매재를 실시하였습니다. 마침 강회지역이 소금 생산지고 당왕조에 충성하던 터라 효과는 톡톡히 봤죠. 그래서 여기서 확보한 세금으로 당왕조는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송에서도 소금 전매는 유지하여 국가가 독점 판매하는 관매법을 실시하였다가 북송 중기에 소금의 유통과 판매 부분에 상인을 활용하는 통상법으로 바뀝니다. 이로 인해 염상은 대자본을 축적하게 되었죠.


   송을 점령한 원 정부는 송과 중국 역대왕조의 소금전매와 소금전매가 주는 막대한 이익에 대해 금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몽골인들은 중국의 세법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금을 점령했을 때 약탈적 관행을 버리고 금의 관리였던 야율초재의 건의를 받아 중국왕조에서 실시했던 징세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그래서 십로징수과세소를 설치하고 호를 단위로 세금을 걷은 바 있습니다.

   소금 전매는 원 중앙 정부 세입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소금 전매를 실시했던 것일까요? 먼저 관아에서 운영하는 제염장이 있습니다. 송과 마찬가지로 원에서도 관아의 감독하에 소금 생산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소금을 판매하고 싶은 상인이 있습니다. 이들 상인들은 아무렇게나 제염장에 가서 소금을 살 수 없습니다.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하죠. 그러면 국가의 허가를 어떻게 받냐? 바로 상인들이 소금 판매 허가증인 염인을 사야 합니다. 염인은 국가에서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것이죠. 상인은 국가에서 발행하는 염인을 사서 제염장으로 가고 그곳에서 소금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소금을 아무데다 파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미리 지정한 장소에서 소금을 판매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염인을 살 때 지불하는 판매 대금이 원 중앙정부 세수의 80%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정말 압도적인 비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염인은 부를 불러다 주는 증서이기 때문에 염인 그 자체로 가치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염인은 하나의 종이 증서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고액 화폐로서 인정받게 됩니다.


   그런데 단순히 소금 전매가 중앙 정부의 수입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원의 재정에도 막대한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원은 송의 여러 부분에서 경제정책을 계승 발전시켰습니다. 그 중 하나가 종이돈인 교초입니다. 중국은 통상 구리로 만든 동전을 활용하였지만 구리 생산량 부족으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특히 상업경제가 발전한 송과 원에서는 더욱더 부족함을 느꼈겠죠. 그래서 종이 돈이 활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종이돈은 종이에 글자와 숫자를 써놓은 증서에 불과했지만 금이나 은, 구리 등 무언가를 담보할 수 있는 물건이 있으면 종이돈의 가치는 보장이 됩니다.


   그런데 교초는 금속화폐가 아니라 마음 먹으면 마음 먹은 만큼 마구 찍어낼 수 있습니다. 담보 가치 이상 찍어내면 결국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교초의 신용도가 떨어집니다. 실제 원에선 중원초라는 교초를 남발하여 신용도가 떨어져 지원초라는 교초를 다시 찍어냅니다. 그런데 지원초가 원이 멸망할 때 까지 신용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염인 때문이었습니다. 지원초는 염인의 판매대금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죠. 소금 전매 정책이 남발되던 교초의 신용도를 유지하여 원의 금융정책이 지속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의 입장에서 소금은 원의 경제를 유지할 수 있게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니 소금 산지인 운남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운남은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바다가 없습니다. 바다가 없음에도 소금을 생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금은 바다에서만 생산되지 않습니다. 과거 바다였다가 육지가 된 곳에 바다의 흔적인 소금이 남고 인류는 이 소금을 활용했습니다. 운남에는 염분이 함유된 지하수가 흘렀고 예부터 운남사람들은 이 곳에 우물을 만들어 우물을 만들어 소금물을 길러 냄비에 졸여 소금을 얻었던 것이죠. 원 정부에서는 몽골인 올제이우를 소금을 관리하는 직책인 위초로염사사제거에 임명하여 흑정(헤이징)이라는 곳에 파견합니다. 이 지역은 예나 청대나 소금 생산으로 번영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올제이우에게 염정제도를 정비하게 합니다.

 

 


인류가 소금을 얻을 때 지리적인 이유로 바다에만 의존할 수 없었다. 소금동굴(좌), 소금우물(우)



by 동두철액 | 2019/02/01 18:04 | 교류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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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남중생 at 2019/02/01 23:48
오, 소금 동굴! 결정이 맺히는 모양이 신기하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금을 아무데다 파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미리 저정한 장소에서 소금을 판매하게 됩니다."에서
"지정"을 잘못 쓰셨습니다.^^
Commented by 동두철액 at 2019/02/02 06:49
오타가 있었군요. 세심히 봐주신 덕분에 오타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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