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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의 북진정책의 실패2


그런데 사민정책은 결국엔 실패했고 그로인해 고려는 동북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고 조선은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영토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렇게 사민 정책이 실패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여진족들이 건재하여 전투가 빗발쳐 안전하지 못했다는 점도 있을 것이며 삼남지방과 달리 토지가 척박하여 매력이 떨어진 원인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로는 사민된 사람들이 개척된 땅에 붙어서 살 절박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사민된 사람들은 고향 땅을 버리고 새로 개척된 북부 지방에 정착할 이유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고향땅에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민의 대상이 된 당사자뿐 아니라 당대 조정의 정책실행자들도 공감했던 사실이다. 그래서 역을 면제하거나 면천 등의 혜택을 당근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고려 시대나 조선 초기에는 인구가 적고 미개간지가 많았다. 고려 말부터 농장이 만들어지면서 연해지 등을 개간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는 조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개간된 땅은 많았는데 개간된 땅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했다.



그래서 조선의 지주들이 소작인들에게 소작을 주고 싶어도 사람이 귀한지라 소작인들이 땅을 방매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지주들은 안정적인 농업 생산을 위해 사람을 땅에 결박시킬 필요성을 느꼈고 그래서 노비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노비는 주인에 속해 있기 때문에 주인에 의해 이동의 자유가 제약되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 노비들을 확보하기 위해 노비 종부법을 폐지하고 일천즉천을 밀어붙인 것은 이러한 사정이 있던 것이다. 먹고 살 수 있는 땅이 충분한데 누가 위험을 무릎쓰고 새로 개척된 땅에 가서 살고 싶었겠는가?




<조선 시대 노비 출처 : 한국민족대백과사전>

by 동두철액 | 2019/07/08 19:39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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