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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장군과 경영자, 과학자

김부식이 분류한 신라의 시기구분법은 오늘날에도 신라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특히 신라 하대의 경우 진골들의 왕위다툼으로 신라사회가 무너져가는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혜공왕 즉위 이후 진골귀족의 왕위다툼이 격화되었습니다. 혜공왕이 시해된 후 선덕왕을 지나 원성왕이 즉위하면 왕계가 무열왕의 후손들이 아닌 원성왕의 후손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왕권이 약화되고 왕족들이 소가족 중심으로 분지화되면서 진골귀족 가문끼리의 왕위 다툼이 심해집니다.

 

 

진골귀족들이 왕위 다툼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무력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만 충성하는 사병들을 양성하게 되는 것이죠. 문제는 사병들을 양성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듭니다. 사병들 중에 다수는 농사를 짓지 않는 상비병일 것이고 이들의 급료와 무기, , 숙소 등을 제공하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입니다. 진골귀족들은 지방 곳곳에 농장을 만들어 비용을 충당했을 것입니다. 덧붙여 진골귀족들이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 혹은 자신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감당하기 위해 드는 비용도 필요하기에 이 비용 모두 일반 백성에게서 과도하게 수취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진골귀족들의 왕위 다툼이 한창일 9세기가 되면 기근이 반복되고 또한 중앙조정의 권력다툼으로 인해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어 진골귀족들이 조세수취를 하는 데 한계가 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진골귀족들은 지방의 촌주 등 지방재지세력들의 힘을 빌려야했고 이들 지방재지세력들은 진골귀족의 권위를 빌려 성장해 갔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헌창의 난이 일어났고 김헌창의 난 진압 이후 신라조정의 지방장악력은 현저히 낮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후삼국 시대가 도래한 거죠.

 

 

문제는 이렇게 신라조정의 권위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신라조정의 권위가 무너졌다는 것은 중앙권력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지방농민 뿐 아니라 지방재지세력에게도 큰 혼란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갑자기 대한민국 정부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각 지방에 살고 있는 일반 국민들은 여러 가지 혼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치안은 누가 유지할 것이며 세금은 누구에게 내고 자녀들 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하며 직장은 어떻게 다녀야 할지 말이죠. 일반 국민 뿐 아니라 시청의 공무원들이나 경찰 공무원, 군인들도 누구의 지휘를 받고 어떻게 국민들에게 다가가가야 할지 혼란일 것입니다. 결국 누군가는 나서서 이러한 질서를 잡아줘야 했습니다.

 

 

신라 말의 사회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신라 말 사회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과도한 조세징수로 몰락한 농민들이 도적이 되어 지방 곳곳을 횡행했고 기근은 계속 이어져나갔습다. 골품제 질서가 무너져 각 군현이나 기관의 상하관계는 깨져 상호대립이 심해졌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조율하고 중재할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누군가가 성주, 장군으로 불리는 호족들입니다. (호족을 정의할 때 그 범위가 넓기 때문에 이 글에선 일정 영역의 독립적 지배자인 성주, 장군 만을 대상으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들 성주, 장군은 각 군현의 중심이 되는 치성을 중심으로 군현을 장악하고 질서를 바로 잡는데 성공합니다. 이들은 어떤 능력이 있었기에 각 지방사회의 질서를 잡을 수 있었을까요? 이들의 능력에 대한 기록을 살펴봅시다.

 

 

- 매곡성주 공직 : 어려서부터 용감하고 지략이 있었다.

- 골암성수 윤선 : 사람됨이 침착하고 용감하였고 병법에 능했다. 무리를 모아 2천여 명에 이르렀다. 골암성에 거하면서 흑수번의

                        무리를 불렀다.

- 압해현적수 능창 : 수전에 능해 수달이라 불렀다. 망명자를 불러 모았고 드디어 갈초도 소적과 더불어 서로 결합했다.

- 수창군호국의영군장 이재 :

   1)드디어 높은 언덕을 택하여 의보를 축성했다.

   2) “지역민을 편하게 돌보고 마땅히 법등을 환히 들어 빨리 병화를 막아야 한다.

- 벽진군장군 이총언 : 신라 말 벽진군을 보호했다. 당시 군도가 들끓었는데, 견고하게 성을 지켜 백성이 이에 힘입어 편안했다.

 

 

위에 제시한 기록들에게서 주목할 점은 경제적, 재지적, 족적 기반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오로지 이들이 가진 군사적 능력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군사적 능력만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이들 성주, 장군들이 어떻게 자신의 세력기반을 구축했는지 생각해보면 될 것입니다. 통설에선 지방재지세력인 촌주 층이 성장하여 호족으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성주나 장군 밑의 호족들은 통설되로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일정한 영역을 다스리던 독립적 지배자였던 성주나 장군 층의 경우는 지방재지세력출신이 아닌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실상 많은 수의 성주나 장군들은 자신의 출신지를 장악한 것이 아니라 외부지역을 무력으로 장악한 경우가 많습니다. 윤선이나 능창은 무리를 규합하여 다른 지역을 정복했다는 것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재의 경우 그가 본래 6두품 관등을 가진 것을 추정하건데 신라 조정에서 해당지역으로 파견되어 그 지역을 장악했을 것입니다. 견훤의 아버지로 유명한 아자개는 본래 가은현 출신이지만 상주를 장악한 케이스입니다. 궁예와 견훤 역시 자신의 출신지와는 상관없는 옛 백제와 고구려 지역을 장악했었죠.

 

 

이것은 이 성주, 장군들은 다른 지역을 장악할 만한 군사적 능력이 있음을 뜻하며 이것이 당시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본적으로 성주, 장군들의 경우 지방재지세력가나 농민들에게는 외부에서 온 침략자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군사 기반을 지방사회의 질서를 잡는데 사용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적떼를 막거나 이웃 군현과의 갈등을 해결하거나 사법 재판관 노릇을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혼란을 겪던 지방사회에선 성주나 장군들의 군사적 능력을 환영했을 것입니다. 즉 성주나 장군은 질서를 잡아줄 수 있는 당시 사회 구성원들이 바라는 인간상이라고 볼 수 있죠.

 

 

2020년을 앞둔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 바라는 능력이 존재합니다. 위인전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위인전은 아이들에게 꿈과 목표를 제시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가 잘 들어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인전의 인물들을 보면 애플사의 스티븐 잡스, 한글과 컴퓨터의 이찬진, 쥐라기 공원을 제작한 스티븐 스필버그, 현대그룹을 세운 정주영, V3로 유명한 안철수,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등입니다. 한마디로 경영, 과학, 예술 등 전문분야에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번 인물들입니다.

    


<who시리즈. 안철수씨 뿐 아니라 유재석씨, 김연아씨 등 여러 현대 인물들을 주제로 위인전을 낸다.>


 

이는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선 경제적 부가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가 종전에는 2차 산업으로 경제적 부를 축적했지만 이제는 3차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적 부를 축적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 것이죠. 그래서 위인전도 이와 맡게 인물들을 선정하게 된 듯합니다. 이렇게 시대가 바라는 능력은 바뀌어도 언제나 시대는 사람들에게 상황에 맞는 능력을 요구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한국사신론

손흥호(2019), 9세기 전반 신라의 사회 변동과 지방사회, 대구사학135

최종석(2004),나말여초 성주, 장군의 정치적 위상과 성,한국사론500

박용국(2005),신라 헌덕왕대 김헌창의 난과 진주지역,퇴계학과 한국문화37

김정은(2000), 서점가를 점령한 21세기형 위인전, 출판저널2860

 

by 동두철액 | 2019/08/07 16:14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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